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
- 작성자
- 반정우아빠
- 2011-06-25 00:00:00
정우야 공부하기 힘들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아래 글을 읽어 보렴.
아래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 글이야.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 과정에 있단다. 그리고 국내의 굴지의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구나.
어머니와 형을 미국에서 모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보살핀다고 한다.
잠시 머리를 식혀 봐.
그리고 파이팅 한번 하자.
우리 정우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 사전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 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 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 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 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밤 나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
아래 글은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 글이야.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며 박사 과정에 있단다. 그리고 국내의 굴지의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구나.
어머니와 형을 미국에서 모시고 같이 공부하면서 보살핀다고 한다.
잠시 머리를 식혀 봐.
그리고 파이팅 한번 하자.
우리 정우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 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 사전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 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 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잠바를 한 겨울에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 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 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 날밤 나는 졸음을 깨우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가며 밤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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