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派獨 광부·간호사 50년 - 그 시절을 다음 세대에게 바친다] [1] 독일 현지 르포

작성자
이규환 (이진표 부)
2013-01-29 00:00:00
광부 7936명·간호사 1만1057명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 파견
"매일 막장서 2~3명 부상… 쉬고 싶어 망치로 손 쳐달라 부탁도 했지
당시 조국으로 보낸 1억달러 경제 발전 밑거름됐다는 게 자랑스럽다"


파독 광부 출신 김근철씨가 지난달 14일 독일 아헨의 옛 에밀마이리시 광산 자리에 전시된 화차를 가리키고 있다. 양모듬 특파원

1963년 12월 21일 가난한 나라 한국의 젊은이 123명이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66년엔 간호사 128명이 독일 땅을 밟았다. 1977년까지 광부 7936명과 간호사 1만1057명이 독일로 파견됐다. 광부·간호사를 파견하며 빌린 차관과 그들이 송금한 1억여 달러의 외화는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50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우리가 흘린 눈물과 땀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저기 돌산 보이세요? 실은 석탄을 캐내면서 파올린 돌이 쌓인 거예요. 우린 버럭산이라고 불렀어요."

독일 서부 아헨에 사는 김근철(75)씨는 지난달 14일 시 외곽 공업지역 아돌프 광산을 찾았다. 그는 높이 20~30m쯤 돼 보이는 돌산을 보더니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눌렀다. "50년 전 처음 여기 왔을 때 신체검사 받고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저곳 주위에 나무 심는 일이었는데…."

김씨는 1963년 12월 21일 파독 광부 1진 123명 중 60명과 함께 아돌프 광산에 배치됐다.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해 알래스카와 뒤셀도르프 공항을 거쳐 19시간 걸리는 길이었다. 탄광 풍경을 보고는 겁이 덜컥 났다. 그래도 한국에선 신학대학을 다닌 목사 지망생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광부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 농사일을 돕고 있을 때 어느 날 한 친구가 신문을 가져왔다. 파독 광부 모집. 인생이란 때로 우연이 결정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처음 5년간 10명이 죽었어요. 거의 매일 2~3명씩 막장에서 부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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