派獨 광부·간호사 50년 (6)

작성자
이규환 (이진표 부)
2013-01-29 00:00:00
[派獨 광부·간호사 50년 - 그 시절을 다음 세대에게 바친다]
[6] 대학 중퇴하고 탄광생활 3년… 김태우 신영필름 대표

"기술 배워 조국에 돌아가자" - 시청각교육때 접한 다큐 보고
영화 촬영기술자 되겠다 결심… 집 한채 값 주고 카메라 사 귀국
한국 발전상 다큐로 찍어 - 경부고속도로·지하철 개통… 경제발전 역사의 현장 담아
"獨서 흘린 땀 내 삶의 발전소… 뇌출혈도 이겨낼 겁니다"

"1964년 11월 스물넷 나이로 학업을 중단하고 파독 광부로 독일에 갔습니다. 그것이 훗날 영화계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인생의 시작이 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죠."

김태우(73) 신영필름 대표가 대학(고려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1960년은 한국 현대사의 격변이 시작된 해였다. 입학하자마자 4·19였고 이듬해 5·16이었다. 군 제대 후 복학하니 한·일 회담 반대 6·3시위가 벌어졌다. 나라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졸업을 세 학기 앞두고 학교를 그만뒀고 새 길을 찾아 파독 광부가 됐다.

대학생에게 탄광 근무는 엄청난 시련이었다. 함보른 광산에 배치된 그는 섭씨 36도 지하 막장에서 장화 속에 고인 땀을 몇 번이고 쏟아내며 일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했던 김 대표는 막장 근무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하다는 스템펠(stempel)과 카페(kappe)설치팀에 자원했다. 카페는 막장 끝에서 채탄 기계와 운반 컨베이어를 전진시킬때 막장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천장에 덧대는 가로받침대이며 스템펠은 카페를 떠받치는 쇠기둥이다. 붕괴의 위험 속에 40㎏이 넘는 육중한 스템펠과 카페를 설치하며 그는 "돈 벌고 기술 배워 조국에 돌아가야 한다" "오직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수없이 되뇌었다.


45년 동안 간직한 朴대통령 편지… 파독 광부였던 김태우 신영필름 대표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병원에서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파독 광부·간호사들에게 보낸 인쇄본 편지를 펼쳐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살면서 힘들 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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