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派獨 광부·간호사 50년 - 그 시절을 다음 세대에게 바친다]

작성자
이규환 (이진표 부)
2013-01-29 00:00:00
1963년 외환보유액 1억달러 밑으로 떨어져 아슬아슬
매년 수백만달러씩 송금… 당시 수출액의 1.9 달해


지난 1964년 12월 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하면서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오늘의 위대한 경제 건설과 번영을 이룩한 서독의 부흥상을 샅샅이 보고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한 진짜 이유는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박 전 대통령은 1962년 1월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국가 재건의 청사진을 그렸지만 돈이 없었다. 유엔과 함께 6·25전쟁 이후 1961년까지 우리나라에 약 42억달러를 무상 원조한 미국이 지원 액수를 줄일 것이며 1965년 이후에는 무상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63년 9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1억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의 첫 번째 외환 위기였다. 김입삼 전 전경련 부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6군사정변의 주역 중 한 명이던 유원식 대령의 말을 전했다. "(5·16 다음 날) 한국은행에서 브리핑을 받을 때 우리 외환보유고가 2억7000만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채 1년도 안 돼서 외환보유액이 9000만달러로 떨어졌다는 보고가 올라옵디다. 국내 부담금 만기 상환금 등 확정부채를 빼고 나면 쓸 수 있는 외화가 전혀 없다지 뭡니까…."

이 같은 상황에서 1963년 12월 21일 우리나라 젊은이 123명이 광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2008년 9월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통해 파독 광부·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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