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만드는 기계

편지를 하루 못썼네. 왕이 옥체가 조금 불편하셨었다.
너의 테스트 성적은 보았다. 국어90 수학95 영어90. 전반적으로 썩 잘했다고 말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지만 그럭저럭 하는 시늉은 했구나 미스터 오(吳).

그나저나 내 과목을 가장 잘 보셨다니 좀 의외이기도 하다. 꽃 여사님께서 당부하시길 내일이 너의 생일이라고 하시더구나.
일단 형식상으로나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해야하긴 하겠는데... 과연 네가 태어난 것이 축하할만한 일인지 아니면 너를 위로해줘야 하는 안쓰러운 일인지는 다시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도다.

너무나 어이없는 사실은 벌써 너의 학원생활이 거의 절반이나 지나갔다는 점이지... 바로 어제 들어간 것 같은데 뭘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지나가는 것인지 참... 그래도 인간이라고 먹고 살겠다고 그 안에서 껍껍거리며 꾸역꾸역 사료를 먹구멍으로 넘기고 있을 너의 안타까운 모습을 상상하면 형은 그냥 눈물과 한숨밖에 안나온다.

꽃 여사님께서 외갓집에 다녀오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셔. 이럴 때일수록 우린 공부에 더 전념하는 길이 유일한 효도의 길이다.

너의 허수민도 지금 이 시간에 똥줄이 탈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해. 허수민 한번 이겨봐야지 허구헛날 걔한테 밑에서 점수 깔아주기만 하는 두터운 퇴적층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고개를 내밀고 수민씨 제 머리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거야.

너의 수민이를 위해서라도 한 눈 팔지 말고 학문에 전념하라. 지금 꽃 여사님과 너의 부친께서 너의 생일날이라는 사실 때문에 학원으로 돌격하실 계획까지 세우셨지만 학원에서 면회 금지이기 때문에 좌절하고 계신 것 같다.

너는 그런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 성적을 더 올려서 다음 번 테스트에서는 세 과목 모두 100점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오고충?

나는 보건의료인의 사명감으로 너를 치료해야 할 투철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