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편지

작성자
이모
2024-10-03 00:00:00
안녕 은준아

지난 번 시험이 어려웠니?
그렇지 않아도 9월 말에는 은준이는 잘 지내는가하고 문득 생각이 났는데 시험이 어려워서 기분이 좀 가라앉았나 보구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시험은 많은 과정 중의 하나니까 기운 내.

시험 뿐만이 아니라 살다 보면 내 노력에 비해 결과는 참으로 천천히 몇 년에 걸쳐 때론 수십 년에 걸쳐서 오기도 하거든.
요즘처럼(쇼츠 게임 sns 등등) 탁 치면 반응이 바로 톡 하고 오는 시대에 한두 달 혹은 일이년 노력해서 보란듯한 결과가 없으면
쉽게 포기하고 세상이나 주변을 탓하면서 좀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탓하면서 그만두겠지.
그런데 정말 원하는 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을 당장의 보상 없이도 수년 동안 지속하고 그래서 결국 빛을 보는 사람도 있단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쓴 한국계 미국인 김주혜 작가도 그렇단다.
이 작가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을 읽어보렴. 전체가 다 흥미로웠지만 전부 쓰기에는 분량이 많으니까.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단편소설을 쓰며 생활고도 겪었죠. 그 상황에서 6년여간 첫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에만 매진한 것도 대단한 용기와 끈기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결과가 불확실한 그 시간 동안 소설에 매진하도록 도왔나요? 그동안 지켜온 작업 규칙이 있나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같은 출판사 상사와 동료들에게 읽어봐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들 집어치워라 넌 별로다 이런 식으로 답하더라고요. 그런데 남들이 무시하면 할수록 ‘아니다 남보다 나 스스로를 더 믿는다’는 믿음이 솟구쳤습니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감이 별로 없었고 불안감과 의구심에 많이 시달렸죠. 다만 강렬하고 생생하고 고결한 영감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렇게 쓴 작품은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단 작품인 보디랭귀지 집필이 그랬고 작은 땅의 야수들은 처음 쓰기 시작한 날 이미 그 스토리가 살아서 존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2년쯤 후 정말 앞이 캄캄하게 피로할 때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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